NowweN  Kumho Art Museum  Seoul 2005 curated by Yoon-ok Kim

Butcher shop   145.5*97  2003

 

April 21~ MAy 1  2005

78 Sagandong Jongrogu Seoul Korea

www.kumhomuse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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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day we'll meet again  91*72   2004

 

반쪽과, 또 다른 반쪽이 만나 대칭을 이루는 이 그림들은

어느 한쪽은 반드시 진실이고, 다른 한쪽은 반드시 거짓이다.

현대가 가진 모순과 불안을 감추고자 전부를 드러내지 않고

더 철벽으로 치장한 개인처럼 그 형상은  왜곡된 세계를 맹신하는데 아무런 불편을

느낄 수 없는 현실을 닮았다.

이것은 현실에서 살면서도 자신이 만든 허상 속에서 사는 우리의 삶과도 일치하는 모습이 아닐까?

 

 한쪽은 한쪽으로부터의 반영 즉, 반대의 근원은 바로 다른 반대이므로

 반쪽의 존재의 이유와 근 원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그러므로써 내게 양쪽의 갈림길은 무의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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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d cage   68*48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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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th as well as sky     145*145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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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4.21~5.1 금호 미술관 전시 전경

 

 

  또한 인간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불빛은

필경 햇빛이나 일상적 불빛과는 다른 더 유혹적인 것이었다.

낮에 보면 콘크리트에 보잘것없는 거리도 밤의 불빛으로 영롱하고 아름다워졌다.

이런 상업공간은 현대 도시 시민의 삶을 대변하고 있었다.

조금더 치장하고 관심을 끌고 싶어하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외로운 개체들.

 내게 있어서 가게란 인간의 소유욕, 쾌락주의, 또는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편의 매체로서 인간성을 가장 잘 대변하여, 인간의 초상화를 대신할 수 있는 소재이다.

 

 

 

 

Pink Jungle    194*19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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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  48*68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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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 Stage   130*97  금호 미술관 소장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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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ble Stage   194*130   2005   

 

 

 

 

Blue skies    162*112   2005

 

 

Blue glass curtain   162*11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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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olated socialization   86*86   2005

 

변형의 중심 축이 되는 것은 관객의 시선이다.

길이 멀리 갈수록 하나의 소실점에서 사라지듯이,

 모든 그림에는 소실점이라는 것이 있는데 항상 자연스러운 그림에는

보통 하나의 소실점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 그림에는 두 개의 소실점이 존재한다.

그림에서 두개의 소실점 사이로 한 개의 역소실점이 생기는데

이것이 바로 관람객 안에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관객은 내 그림의 주인공일 수밖에 없다.

 모순된 현실의 모순된 자아가 빨아들이는 그림의 일부분은 관객이 된다.

그림의 주인공은 그것을 상상하는 자의 몫이다.

반쪽 짜리 삶을 살게 될 주인공은 반은 노출되는 삶, 반은 숨겨진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반쪽은 욕하면서 반쪽은 웃는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그 반쪽 짜리의 삶을

- 마법의 삶을, 게임의 삶을, 기도뿐인 삶을, 성에 몰두하는 삶을,

진실한 사랑의 삶을, 범죄의 삶을, 도박의 삶을, 복수의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 -동료작가 김재형으로부터

"내가 선정한 최준경씨는 05년 4월 첫 개인전을 한 젊은 작가이다.

 작가 선정의 가장 큰 이유는 내게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그림과 생각의 많은 부분에 공감할 수 있었고 내게 자극이 되었다.

 그녀의 작업실을 개인전 이전에 두 번 갔던 적이 있고 처음 갔을 때와

 두 번째 갔을 때의 작업실은 많이 다른 모습이 되어있었다.

 나는 그동안 그녀가 많은시간을 작업을 하며, 많은 작업에 대한 고민을 하며

 그 동안의 여러 달의 시간을 보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의 생각이 이렇다 저렇다 하기에 앞서서 느낀 것은 진지하다는 것이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고 어떤 직업임을 떠나서 자꾸만 애착이 가는 부분이다.

 그리고 내가 매력을 느낀 부분은 여러 가지 주제나 생각을 다루고 있지만

 일관성 있는 공통된 부분이 그 중에 느껴짐이다.

 나무하나하나를 보되 숲을 보라는 얘기가 있다.

 너무 객관적 이지만도 또 너무 주관적이지도 않으려 애를 쓰며,

 너무 빠져들면서도 그렇다고 전체를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쓰며 얘기를 꺼내본다.

 아마 작업하던 작가도 이러한 마음으로 작업하지 않았을까.

 

  작품 대부분이 처음 마주하게되면 대부분이 좌우 대칭구도의 평면작품이다.

 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평면이라고는 하지만 많은 것이 그림 뒤가 투과되는 실크스크린 위에 그려져 있다.

 이는 어떤 입체감을 느끼게 한다.

 실제 전시장에서도 그림 뒤쪽으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벽과 작품사이 간격이 있는 것도 있었다.

 그로 인해 그 작품은 뒤쪽 그림자로 생긴 부분도 또 다른  느낌을 내고 있었고

 뒤에서 본 작품은 앞에서 본 그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게 하고 있었다.

 작품안을 보면 대부분 실외 풍경이다

그런데 이곳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있는 곳이 아니다.

 우리가 도시에 산다면 흔히 볼 수 있는 그냥 지나칠지도 모를 곳들이다.

 하지만 작품은 통해 우리가 보게되는 풍경은 어딘가 다르다.

 반으로 나누어져 좌우 대칭의 그림들은 익숙한 곳들이면서도 더 이상 익숙한 곳이 아니다.

 이는 지금을 살아가는 이곳을 잘 표현했다고 느낀다.

 우리가 사는 곳은 모순됨이 우리의 삶과 공존하고 있으며

 현실과 허구를 동시에 살고 있음이다.

 조금 더 그녀의 작품을 들여 본다면 그녀가 많은 이야기를

 작품 하나 하나를 통해 보여주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에 대해 그 중 몇 가지 이야기가 있다.

  그녀는 소실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좌우 대칭의 구도에서 양쪽으로 소실점이 생겨 우리에게 멀어져간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양쪽으로 멀어져 가는 소실점을 역으로 따라 오게되면

 그림 밖의 지점에 다른 소실점이 생기는데

 이는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 관객의 위치가된다.

 이에는 그림에 관람객을 포함시키고

 그림의 내용과 관람자의 이야기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님을 이야기 해준다.

 역으로 우리가 바라보는 실제라고 하는 곳이야 말로 반쪽만을 보여주는

 그러한 반만이 보이기에 나머지를 숨기고 살아가는 느낌을 전해준다.

  그 다음은 사회 비판적인 것을 소재로 작가 자신의 방향에 대한 혹은 희망에 대해서이다.

 그녀는 젓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젖소는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사람들이 강제로 젖소에게 임신을 시키고 그 송아지를 빼앗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우유를 짜낸다. 이를 평생 반복하다. 젖소는 생을 마감한다.

 이 이야기는 인간기준의 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인간이 저지르고있는 많은 비인간적 이야기를 대변한다.

 이에 작가는 강한 비판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그녀의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는 작품에도 잘 드러난다.

 난 이이야기가 작가 자신의 이야기와 다름이 아니라고 느꼈다.

 그리고 사회 비판적인 이야기임을 넘어 작가는

 현대 작가들이 가치를 끊임없이 공장처럼 만들다가 사라지는

 이 시대의 또 다른 형태의 젖소와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작가 자신은 이 시대의 작가가 가야할 길과 이 시대의 많은 작가들이

 이러한 생산라인에 들어가듯 제도권에 포함되어 또는 포함되려 애를 쓰는

 작가들이 잃어버리고 있는 중요한 그 것에 대해이야기를 한다.

 이는 자신의 가려하는 그 것과 다름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여러 그림에서 이분법적 사고와 기준의 편견의 허망함을 보여 주고 있다.

 진지한 접근이 아닌 일회적인 판단 기준의 의미 없음을 작품을 통해 잘 보여준다.

 작품에서 예를 들면 <땅-이곳은 땅이며, 동시에 하늘이다.>라는 그림은

 지구 밖에서 보느냐 안에서 보느냐에 따라 같은 대상을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가 잘 보여주고 있다.

 이는 편향적인 사고방식의 의미 없음을 짚어내 표현하고 있다.

  여러 부분에서 작가는 물질 만능주의에 물들어 있는 지금의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여러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도시의 네온사인과 인공조명들이 그림에 많이 등장하며,

 이는 우리가 사는 곳을 모순적이고 부조리한 현실을  더 잘 드러내 주고 있다.

 그런 생각의 배경에는 청소년 시절 집 앞에서 허망하게 무너져버린 삼풍 백화점의 기억,

 그 이후 그곳에 다시 지어지던 고층건물들을 바라보며 느꼈던 문명사회의

 부조리와 비인간성에 대해 현실의 왜곡된 면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의지하고 안식을 찾아서 가는 종교에 대해 서도 많은 부분이 사업화 되고,

 어떻게 보면 가장 인간적이어야 할 종교가 너무나 비인간적이라는 것에 대해 비판을 한다.

 작가는 그리고 청소년 교육에 있어서도 이야기한다.

 아직도 성행하는 돈 봉투 같은 것들, 학교와 학부모들의 비틀어진 교육열과,

 그 이면에서의 숱한 부조리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많은 것들이 작품에 직접적으로 표현 되어있는 부분도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분명한 것은 작가는 먼 세상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우리가사는 세상에 대해 바라보고

 우리에게 그에 대해 작품으로 이야기하고 잇다는 것이다.

 작가 자신 주변의 이야기로 보일수도 있지만 작가는 자신주변의 이야기를 함으로 해서

 이 사회의 일반적인 부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점점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현대인에 대해,

 인간성과의 지속적인 결여가 지금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잘 나타내고 있다.

 내가 작품을 보면서,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낀 것은

 작가가 많은 부분에서 구분의 무의미함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마치 동전 양면의 구분처럼 말이다. 현실과 허구가 처음부터 다름이 아닌 하나이며,

 이를 보는 기준과 관점에 따라 보는 이의 편견과 오해가 여럿 생긴다는 것이다.

 이는 포스트모던에서 언제나 화두가 되는 해체와 맥락을 같이 한다는 생각이다.

 이와 유사한 생각을 나는 불교적인 관점에서 강하게 느낀다.

 불교에서 말하는 너와 내가 다르지 않으며, 이것과 저것의 구분의 무의미함을 거듭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필자 본인의 생각과 많이 겹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비판적인 시각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시 말하면 작가는 지금 불만이 많다.

 이 불만들과 작가자신이 느끼는 답답함 혹은 열 받음이 작품을 하는 큰 동기 되어 보였다.

 단지 반발이나 표출로써만 마침이 아닌 이 사회에 대한 진지한 시각의 한층 더 성숙을 기대하게 한다.

 이는 자칫 이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반발이 극으로 치우쳐 객관적 시각을 잃게되지는 않을까 우려함이다.

 어떠한 옳은 주장과 생각도 너무 치우치면 이미 옳은 주장이 아니게 됨과 같다. 자기의 주관이 있되,

 아무리 열 받아도 객관성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냉정하게 보는 면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고 너무 열 받아있는 면도 부분적으로 느꼈다.

 개인적으로 필자의 생각과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이는 비슷한 세대를 살아와서일지도 모르지만 단지 그 것이 이유는 아닐 것이다.

 지금의 작가에게 바라는 부분은 아니고 걱정이라면 걱정이 있다. 이는 나의 걱정과 겹쳐진다.

 구분의 무의미함이나, 기준의 해체들이 가져올 수 있는 많은 것들이 부정적으로 해석됨이 많음을 본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이것의 비관주의나 허무주의 같은 방향으로의 해석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견해들은 대안의 부재와 해결책의 상실들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가 하고픈 말은 작가가 이런 지나친 비관이나 허무로 치우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나는 그대로의 받아들임이 긍정적 해결로서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상황의 진단이나 비판도 중요하다.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그 시대의 해결책과 대안의 제시를 해온 것이 작가와 예술가들이었다.

 많은 작품으로 그리고 이야기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준 최준경 작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언제나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최준경 작가와 많은

 이 시대의 젊은 작가들과 나 자신에게 오래전 젊은 중에게 들은 말로 전한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 숫타니파타 중에서 (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의 시경(詩經) 中 -